기록속의 식민지교육, 일제강점기의 보통학교

우리나라 근대교육은 개항 이후 1880년대 이후 도입

서구 열강의 외침으로 인한 위기의식에서 출발.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근대 교육 본격 시행
1895년 ‘홍범14조’가 발표되면서 언문일치 원칙의 법제화, 신분제와 과거제도의 폐지가 단행되고 문명개화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자각되어 종래의 경서(經書)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실용성과 공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근대교육에 대한 열기는 이후 한층 고조되어 전국 각지에 근대식 학교를 세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개화기 초기 조선에 설립된 근대학교는 대부분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스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1910년 기준으로 총 796개의 미션스쿨이 건립. 기독교계 학교들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교육기회였다면 이와는 반대로 자생적 민족학교들도 설립되기 시작. 이는 주로 강화도조약으로 개항된 개항장 주변에서 발생하였다. 그 원인은 일본 상인들에 대항하기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자발적 목적으로 인한 것이었다.

근대 시기에 설립된 학교들은 제각기 설립목적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공간으로 가장 선두적인 역할을 했으며 학교를 중심으로 근대화의 분위기가 점점 더 확장되고 있었음을 볼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을사조약(1905년)의 체결과 한일합방으로 일제에 의한 식민주의 교육으로 대체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관내 학교의 개교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