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여자중·고등학교

학교소개

1907년 9월 25일 위대모(놀만 오 휘드모아)목사 노세영(세릴로스박사), 사락스(A.M 새록스)박사 등 미국 기독교 북장로회 선교사와 양전백목사, 이성삼장로 등의 발기로 본교를 창립하였다. 1907년 10월 10일 교명을 ‘예수교 보성여학교’라 칭하고 평북 선천읍에서 개교하였다. 1935년 5월 9일 사립 보성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38년 3월 31일 신사참배 문제로 선교회에서 손을 떼고 평북, 의산, 용천 3노회만 변경 인가를 받았다. 1942년 4월 1일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경영권을 박탈당했다가 1950년 5월 5일 남한 서울에 재건되었다. 1953년 9월 1일 영락교회 부속건물을 임시교사로 사용하였으며, 1955년 4월 1일 용산구 용산동 2가 8번지에 가교사를 건축하고 이전하였다.

설립일

1907-09-25

연혁

1907년 9월 25일 : 위대모(놀만 오 휘드모아), 목사 노세영(세릴로스 박사), 사락스(A.M 새록스) 박사 등 미국 기독교 북장로회 선교사와 양전백 목사, 이성삼 장로 등 여러분의 발기로 본교 창립
1907년 10월 10일 : 교명을 '예수교 보성여학교' 라 칭하고 평북 선천읍에서 개교, 미국 선교사 최미례(루스・주이스) 여사 초대 교장으로 임명
1935년 5월 9일 : 교명을 '사립 보성여학교' 로 개칭, 수업 연한 3년제 학칙 변경인가
1938년 3월 31일 : 신사참배 문제로 선교회에서 손을 떼고 평북, 의산, 용천 3노회만 변경 인가
1950년 5월 5일 : 재단 이사장 한경직 목사, 백영엽 목사, 이영찬 및 동창 여러분의 노력으로 남한 서울에 재건됨
1950년 6월 25일 : 6・25 동란으로 부산에 피난하여 경영
1953년 9월 1일 : 서울 수복, 환도 후 영락교회 부속건물 임시교사로 사용
1955년 4월 1일 : 용산구 용산동 2가 8번지에 가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