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총독관저 일대 행사사진
| 매일신보 (1912.5.10 ~ 5.28) 보기
| 테라우치 마사타케 일기 (1912.5.11 ~ 5.25) 보기
이러한 접견행사가 벌어진 배경으로는 당시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을 새롭게 공포(1911.8.23 제정, 1911.11.1 시행)한 것과 「조선총독에 대한 교육칙어 (敎育勅語) 하사」(1911.10.24)를 계기로 일본천황의 뜻을 받들어 ‘충량(忠良)[3] 일본 국민(國民)’이 될 것을 강조하는 한편, 테라우치 총독 그 자신에 의해 식민통치 2년간 교육기관을 증설하고 개선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 두고 있다는 치적(治績)을 과시하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편, 사진촬영의 동기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12년 5월 16일자에 수록된 '아동사진헌상(兒童寫眞獻上)' 제하의 기사[4]를 참고할 만하다. 기사에 따르면, 테라우치 총독 자신이 관할하는 식민지 조선의 통치현황 을 자랑하려는 의도에서 이러한 행사의 장면들을 담은 다수의 사진들이 촬영되었고, 더구나 이것들을 담아 일본황후에게 사진첩을 헌상하려 했던 뜻도 함께 담고 있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 |
[3] 충성스럽고 선량한[4] "테라우치총독(寺內 總督)은 거(去) 12일 내지인 소학교생도(內地人 小學校生徒)를 인견(引見)할 시(時)에 촬영(撮影)한 사진(寫眞)과 공(共)히 내(來) 18일에 인견(引見)할 조선인측 보통학교생도(朝鮮人側 普通學校生徒)의 분(分)도 촬영(撮影)하여 신영토(新領土)의 소국민 현상(小國民 現狀)을 헌람(獻覽)에 공(供)하기 위(爲)하여 불일(不日)황후폐하(皇后陛下)께 헌상(獻上)할 터이라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