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총독관저 일대 행사사진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이던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1912년 5월 25일(토요일) 오후 1시 30분에서 5시 30분에 걸쳐 경성부(京城府) 지역에 있던 조선인 관공립(官公立) 보통학교 전체 생도(2,800명)를 남산 왜성대(南山 倭城臺)에 있는 총독관저(總督官邸)로 초대하여 인견(引見)[1]하고 관저 후면의 호도원(好道園)[2] 일대에서 원유회(園遊會)를 베푸는 행사를 벌였는데, 이번에 발굴된 14매의 사진자료들은 바로 이날에 촬영된 것들이다. 이 행사는 원래 1912년 5월 18일(토요일)에 거행할 것으로 예정되었으나, 당일 비가 오는 관계로 다시 일주일이 연기되어 실시되었다.


이보다 앞서 1912년 5월 12일(일요일)에는 경성지역 일본인 소학교 생도 4,000여 명을 초청하여 역시 총독관저 구내(호도원)와 경무총감부 광장 일대에서 접견식을 겸한 운동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당시 일본인 소학교 생도와 조선인 보통학교 생도를 대상으로 한 이들 행사의 진행과 관련된 내용은 『매일신보』의 지면을 통해 여러 날 소개된 적이 있고, 또한 테라우치 총독 자신이 남긴 『테라우치 마사타케 일기』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1]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들여 만난다는 표현
[2]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이름을 딴 자연동산

| 매일신보 (1912.5.10 ~ 5.28) 보기


| 테라우치 마사타케 일기 (1912.5.11 ~ 5.25) 보기


이러한 접견행사가 벌어진 배경으로는 당시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을 새롭게 공포(1911.8.23 제정, 1911.11.1 시행)한 것과 「조선총독에 대한 교육칙어 (敎育勅語) 하사」(1911.10.24)를 계기로 일본천황의 뜻을 받들어 ‘충량(忠良)[3] 일본 국민(國民)’이 될 것을 강조하는 한편, 테라우치 총독 그 자신에 의해 식민통치 2년간 교육기관을 증설하고 개선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 두고 있다는 치적(治績)을 과시하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편, 사진촬영의 동기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12년 5월 16일자에 수록된 '아동사진헌상(兒童寫眞獻上)' 제하의 기사[4]를 참고할 만하다. 기사에 따르면, 테라우치 총독 자신이 관할하는 식민지 조선의 통치현황 을 자랑하려는 의도에서 이러한 행사의 장면들을 담은 다수의 사진들이 촬영되었고, 더구나 이것들을 담아 일본황후에게 사진첩을 헌상하려 했던 뜻도 함께 담고 있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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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

[3] 충성스럽고 선량한
[4] "테라우치총독(寺內 總督)은 거(去) 12일 내지인 소학교생도(內地人 小學校生徒)를 인견(引見)할 시(時)에 촬영(撮影)한 사진(寫眞)과 공(共)히 내(來) 18일에 인견(引見)할 조선인측 보통학교생도(朝鮮人側 普通學校生徒)의 분(分)도 촬영(撮影)하여 신영토(新領土)의 소국민 현상(小國民 現狀)을 헌람(獻覽)에 공(供)하기 위(爲)하여 불일(不日)황후폐하(皇后陛下)께 헌상(獻上)할 터이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