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관저 후면 언덕에 자리한 녹천정(綠泉亭) 바로 앞에서 조선인 보통학교 생도들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는 테라우치 조선총독 이하 총독부 관리 일행의 모습이다. 약간 색감이 옅은 복장을 한 사람들은 일본군인이고, 감색 또는 흑색의 제복을 입은 이들은 총독부 관리들이다. 이들 관리의 신분은 모자의 테두리선이 세 줄이면 칙임관(勅任官)이고, 두 줄이면 주임관(奏任官)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녹천정에 인접한 지점에서 어린 조선인 보통학교 여자 생도들의 이동 상황을 북쪽 방향(시내 방향)으로 포착한 장면이다. 대일본애국부인회의 회원인 듯한 일본인 여인이 이들의 이동경로를 안내하고 있으며, 여생도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한복차림의 여성은 이 학교의 교원으로 보인다.
한 무리의 조선인 여학생들이 경무총감부 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남산 골짜기에 놓인 나무다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의 중간에 보이는 나무다리가 곧 보륭교(寶隆橋)이며, 이곳을 건너면 이른바 헌병경찰제도의 총본산인 경무총감부이자 헌병대사령부(지금의 남산골한옥마을 자리)가 나타난다.
양산을 들고 드레스 차림을 한 서양 여인들이 앞장 서서 보륭교(寶隆橋) 나무 다리를 건너는 순간이 포착된 사진자료이다. 이들의 뒤쪽으로는 조선인 측 귀부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들은 당일 행사의 보조하기 위해 초청한 서울 주재 외국 영사관의 외교관 부인 또는 선교사의 부인이거나 대일본애국부인회와 관련한 귀부인들이다. 사진의 아래 쪽에는 각각 ‘보륭교(寶隆橋)’와 ‘명치(明治) 43년 11월’이라는 글씨의 일부가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명치…
보륭교(寶隆橋) 나무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이동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인 보통학교 남자생도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손에는 일장기와 함께 봉지 하나씩을 함께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이 지점에서 조선총독이 기증한 과자 선물이 한 꾸러미씩 배포된 것이 아닌가 한다.
‘보륭교(寶隆橋)’를 막 건너고 있는 테라우치 조선총독 일행의 모습이다. 맨앞이 테라우치 총독이고 바로 그 뒤에 야마가타 정무총감(山縣 政務總監)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곳의 다리 이름인 ‘보륭교’는 바로 이곳과 이웃하는 지점에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로 “보조지륭여천양무궁(寶祚之隆與天壤無窮)”이라고 쓴 바위글씨가 있는데서 따온 표현이다. 즉, 보륭교는 “천황의 융성함을 비는 다리”라는 뜻으로 새겨질 수 있다.
‘테라우치 총독 조선인 관공립 보통학교 생도 접견 행사(1912.5.25)’의 마무리 장소인 경무총감부 광장에 도열한 테라우치 총독 일행의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테라우치 총독의 일장 훈시와 함께 천황폐하에 대한 만세삼창(萬歲三唱)을 하는 것으로 행사가 막을 내렸다. 사진의 오른쪽에 일본인 관리의 모습에 겹쳐 동그란 얼굴 모양의 한복 차림 여인 한 사람이 지나고 있는데, 그의 정체는 조선귀족 이완용 후작(李完用 侯爵)의 처인 양주조씨(楊州趙氏)인…
테라우치 조선총독의 초청으로 접견 및 원유회 행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총독 관저 후면에 있는 호도원(好道園) 구역을 관통하여 경무총감부 쪽으로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조선인 보통학교 생도들의 모습이다. 이곳 호도원 일대는 새로운 통감 또는 총독이 부임하거나 일본 천황의 탄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같은 기념일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대규모 원유회(園遊會)가 곧잘 벌어지던 공간이었다.
일장기를 펼쳐든 조선인 보통학교 생도들이 총독관저 후면의 녹천정 앞을 지나 이동하는 장면이다. 흰천으로 만든 깃발에는 ‘미동공립보통학교(渼洞公立普通學校)’라는 표시가 있다. 사진의 왼쪽에 육군대장복을 입고 패도(佩刀)를 땅에 짚고서 있는 인물(측면 모습)이 바로 테라우치 조선총독이다. 소나무에 붙어 있는 ‘녹천정’ 표지판에는 “작년 총독부인이 양잠(養蠶)을 했던 곳”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